취업규칙 변경 공청회, 양대노총 저지로 무산
- 작성일
- 2015-06-04 14: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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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동의없이도 임금 깎는 ‘임금피크제’ 추진 가능?

일개 정부 부처(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이 근로기준법보다 우선인가. 노동부가 노조동의 없이도 임금을 줄이고 노동조건을 저해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취업규칙 변경 지침’을 발표하려다 양대노총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정년 60세 안착을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과 그 방안’(이지만 연세대 교수),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정지원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라는 주제로 발제가 예정되어있던 공청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지난 28일 오후 1시 30분부터 고용노동부 주관으로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릴 예정이던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가 결국 무산됐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 간부 및 조합원 400여명은 노동계의 입장을 막는 경찰 병력을 뚫고 공청회장에 진입해 현수막과 손피켓을 펼치고, 근로기준법 위반도 마다하지 않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조건 완화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축사를 위해 공청회장에 진입하던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노동조합의 강력한 저지로 끝내 발길을 돌렸고 주최측은 공청회가 무산되었음을 선언했다. 양대노총이 힘을 합쳐 공청회를 빌미로 사실상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던 정부의 꼼수를 막아낸 것이다.

한국노총 대표로 발언에 나선 우리연맹 이경호 사무처장은 “경찰을 내세워 공청회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정부의 현실’이라며 ”적게 주고, 쉽게 자르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그 전에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인턴을 폐지하라“고 말했다. 이어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임금에 대해 정부가 근로기준법마저 위반하며 개입하는 것은 안된다“고 밝혔다.
임금피크제처럼 노동자의 임금이 삭감되는 취업규칙의 불이익한(노동자 입장) 변경은 법에 따라 반드시 전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노조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이 ‘사회적 통념상 합리성’을 갖춘다면 유효할 수 있다는 취지의 지침을 발표했다. 이미 임금피크제 시행 권고안이 발표된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에도 ‘임금을 덜 줘도 불법이 아니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본격화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노동부는 공청회 전날인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업규칙 변경의 기준과 절차에 대한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임금피크제 등 불이익 변경 여부에 대해서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 정도 ▲사용자 측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상당성 ▲노조와의 충분한 협의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조 동의 없이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인정받으면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해석했다. 성과연봉제 등 성과중심의 임금체계 도입도 그 자체로는 불이익 변경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는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핵심내용이다.
공공부문을 필두로 전체 노동시장을 개악하겠다는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실, 이는 어디까지나 노동부의 행정 지침일뿐,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부의 지침이 법보다 가까운 현장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해 온 점, 실제 취업규칙 변경에 있어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는 점 때문에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국노총은 가이드라인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이기권 장관 고발을 검토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은 지난 달 20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양대노총은 더 쉬운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할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시도에 7~9월 전체 조합원 총파업 투쟁으로 반드시 저지한다는 계획이다.